LuckyFace's Systems Lifescience
대가를 만나다 - 정경화 본문
이번주에 카이스트에는 아주 반가운 공연이 있었다.
바로 바이올린의 여제 - 정경화
정경화는 올해 68세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이기도 하다. 사실 나이를 보면 내 세대의 음악인은 아니지만 내가 정경화를 각별하게 생각하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다. 바로 우리 어머니다.
한창 중학교 사춘기시절을 보내던 나는 하루 시험성적때문에 어머니와 크게 다툰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부끄러운 추억이 그렇지만, 돌이켜봤을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긴 했다. 내가 중2 어느시험엔가 전교 2등을 했는데, 1등을 한 친구에게서 체육 수행평가를 뒤져서 였다. 사실 나도 열심히 한다고 했을텐데, 못내 그게 아깝고 아쉬웠었나 보다. 속상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보니,내 어머니는 나보다 더 아까워 하셨다. 아까워만 하셨으면 괜찮았을텐데, 체육 수행평가가 왜 뒤졌느냐에서 제대로 준비한게 아니냐라는 야단으로 이어졌다. 나는 몇번 볼멘소리를 하다가 그만 어머니께 큰 소리로 화를 내고 말았다. 그때 아마 집에서 나가려고 했던것 같기도 하다. 그때 어머니께서 본인이 왜 그렇게 나의 성적과 학업에 대한 집착이 크셨는지 눈물과 함께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간략히 하면, 집안 형편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 어머니께서 정말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하였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등록금 마련하랴 집에 돈부치랴 힘든 생활을 하셨다 한다. 그때 마침 학교에 정경화가 공연을 왔는데 정말 너무 보고 싶었는데, 본인은 그 공연을 볼수 있는 처지가 안되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한다. 그때 그 아쉬운 마음이 얼마나 크셨는지, 거의 30년이 지난 그날에 그이야기를 꺼내셨었다. 그게 내가 정경화를 알게 된 날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이 대가 할머니는 연주시작전에 본인이 고른 바흐 무반주 곡에 대한 소개와 본인의 각오를 짧게 이야기하고 무대 한가운데 섰다. 바이올린을 어깨와 머리사이에 올리고 다리를 어깨 넓이만큼 벌린 상태에서 활을 쥐고 잠시 명상을 한다. 숨막히는 순간이 이어진뒤에 곡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전부터 정경화의 연주를 듣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반복이 거의 없는 정해진 박자도 없는 그 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경건함을 느끼게 했다.
이 모습을 올해 초 백건우 공연에서도 느낀적이 있다. 지극한 아름다움을 목표로 정진해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이 아우라.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나는 항상 부끄러워지게 마련이다. 내가 하는 일, 실험, 논문 얼마나 치열하게 하고 있는가. 내가 내 결과에 자랑스러운가. 남에게 보이기 부끄럽지 않은가? 그전에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누군가는 대가를 누구에게 사사받았는가, 얼마나 좋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는가에 집중하기도 하지만, 일평생을 꾸준히 수련해온 고수에게서는 그걸 뛰어넘는 아우라가 있다. 학문의 분야에서도 대가가 있다. 내 지도교수님이 그러하듯이. 그런 대가에서도 역시 고수의 향기가 난다. 정경화의 성격이 독단적이고 까탈스럽다해도 그걸 이해할수 있을것 같았다. 고수니까.
연주가 무르익고 훌륭할수록 왜 나는 자꾸 작아지는 걸 느낄까. 참 아이러니 한 순간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때 그만큼의 숭고함이 느껴졌다. 오늘 연주했던 곡은 바하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곡, 파르티타 2곡이었다. 3곡만 연주하기로 했지만 본인이 1번을 꼭 연주하고 싶다고 고집하여 4곡을 들을수 있었다. 사실 어는 곡을 특별히 기억할만한 멜로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 bwv 1004의 샤콘느는 유명한 곡으로 들어본적이 있는 곡이긴 했지만.
부끄러움과 감동이 함께했던 좋은 공연이었다.
덧붙여.
어릴적 정경화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뮤지션이길래? 호기심에 유튜브와 방송을 뒤져보았다. 집에또 마침 정트리오 시디도 있었다. 세계적인 대가이고 수십년간을 정진해온 분이니, 연주실력은 말해 무엇하겠나. 헌데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카리스마였다. 유튜브속 어린 정경화는 앙다문 입과 날카로운 눈매로 바이올린을 찢어버릴것같은 격정적인 연주를 보여줬다. 그런 정경화는 연주가 조금에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인 머리를 벽에 찧고, 무대 뒤에서는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단다.
사실. 오늘의 연주가 완벽한건 아니었다. 이 노후한 대가는 연주중간에 박자를 놓치기도 했고, 음정이 틀리기도 했으며 미스터치로 날카로운 소리가 나기도 했다.(사실 바이올린을 켜본적은 없지만 기타를 쳐본 경험에 따르면 아마 그러지 않았을가 생각해본거다.)
68세가 되어 처음 만난 정경화는 예전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듯 했다. 실제 인터뷰에서도 중간에 실수가 나와도 "죽을힘으로 다했는데 안되는건 어쩔수 없지 뭐"라며 웃음을 띄기도 했단다.
궁극의 미를 위해 정진해온 대가의 측면에서 본다면 약간 아쉬움이 남긴 했다. 정말 완전무결한 공연을 보고싶은 욕심이랄까. 죽는날까지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꼬장꼬장한 대가를 보고싶은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오는 길에 영상으로 들은 샤콘느는 솔직히 직접 들은 샤콘느에 비해 완성도가 훨씬 뛰어나긴 했다. 실제로 보는 감동은 별개로 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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